쿨레칸 Koule Kan

Dance company / Choreographer Emmanuel Sanou / South Korea

[Article] 데게베 Degesbe, 질문이 떠난 여정

Performance
Projects



데게베(DEGESBE), 질문이 떠난 여정

<데게베 DEGESBE>가 통과해온 시공간은 사뭇 다채롭다. 2016년 마산의 국제춤축제와 대구에서 열린 국제무용제, 2017년 서울의 한 극장, 2018년 부르키나파소의 와가두구에서 열린 무용축제(FIDO)와 서울 곳곳의 거리까지. 해를 거듭하고 공간이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같은 <데게베>는 없었다. 시공간에 따라 참여하는 무용수, 부각되는 소품, 작품 구성, 문제의식을 전하는 방식 등 여러 요소가 변화해왔다. 그러나 작품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와 방향은 단 한번도 달라진 적이 없다. 작품명이기도 한 ‘데게베’는 부르키나파소의 보보어로 ‘무엇을 찾고 있는가? 거기엔 아무것도 없어’라는 뜻이다.

연작 시리즈인 이 작품은 시공간을 옮겨가며 하나의 질문을 끈질기게 탐구한다. 언뜻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마치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전제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질문이 대체 왜 시작되었는지, 다시 질문으로 맞받아치며 파고들면 우리는 다음 질문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의 ‘우리’는 누구인가?

2016년 마산과 대구에서 상연된 <데게베>는 엠마누엘 사누 안무가와 박용일 무용수의 듀오로 구성되었다. 두 존재의 탄생과 차이, 힘겨루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면이다. 엠마누엘 사누 안무가가 한국으로 이주한 이후 경험한 차이와 존재의 뿌리에 관한 물음이 관객 앞에 처음으로 싹을 틔웠다. 차이가 차별로 오역될 때,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이 흐릿해지는 경계 앞에 두 존재는 의자를 가운데 두고 서로 빼앗기고 빼앗으며 고군분투한다.

2017년 서울의 한 극장에서 상연된 <데게베>에는 7명의 무용수가 참여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가로지르는’ 움직임으로 시작해 ‘우주로부터 온 존재’에 대한 사유와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만남’과 ‘조종’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는 의자 대신 마이크 쟁탈전이 벌어진다. 전작에서의 의자가 존재의 위치, 자리에 관한 탐구였다면 2017년의 <데게베>는 더 본격적이다.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려는 존재, 하지만 목소리가 멀리까지 가닿지 않는 존재, 그리하여 종국에는 지워지는 존재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 앞에 존재들은 빙그르르 도는 우산 속에서 짧게 ‘포옹’하지만, 작품은 결국 ‘끝나지 않는 싸움’으로 막을 내린다.

2018년의 무대는 더욱 확장되었다. <데게베>는 ‘길 위에서’라는 부제와 함께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서울숲 등 서울의 번화한 거리 곳곳에서 불특정 다수의 관객과 호흡했다. 관객은 관람자의 시선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난민 구호 현장에서 사용되는 금박 알루미늄 담요를 덮은 관객과 무용수가 서울 곳곳에서 번뜩였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닥에 주저앉은 관객에게 몸으로, 움직임으로, 존재의 전부로 물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중심에 있던 질문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나무 뿌리가 되어 질문들은 계속 가지를 뻗고 새 잎을 틔운다. 질문에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 즉 당신과 나의 탄생, 당신과 나의 차이,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가?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까?

코로나 19가 세계를 뒤덮은 2021년,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처음으로부터(looking back)’라는 부제를 단 여섯 번째 <데게베>를 스크린을 통해 만났다. 아직 쇼케이스(showcase) 단계인 이번 상영작에서는 의자도, 우산도, 마이크도 등장하지 않는다. 앞선 <데게베> 작품에 주요 비중이었던 존재들 간의 갈등과 고투의 장면도 없다. 흙색 옷을 입은 남자와 풀색 옷을 입은 남자가 흙과 풀 사이를 오간다. 자신을 세상에 여는 출발, 만남을 위한 출발, 출발이 된 공간 사이사이를 걷는다. 간혹 뒤를 돌아본다. 그 자리에는 흙과 빛뿐이다. 힘과 쟁취의 상징이었던 의자와 마이크, 화해의 신호였던 우산 대신 두 남자는 거울을 집어 든다. 자신의 거울로 자신을 바라보고, 타인의 거울로 자신을 바라본다. 서로에게 거울을 비춘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탐색을 다시 시작한다. 모든 것이 시작된 여기, 그곳에 <데게베>가 있다. 질문은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이다.


Short Interview

하나의 물음을 끝없이 탐구한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6년 동안 이곳에서, 저곳에서, 이들과, 저들과 함께 멈추지 않고 질문해온 <데게베DEGESBE>의 엠마누엘 사누 안무가(이하 엠마)와 박용일 무용수(이하 용일)에게 물었다.


Q. <데게베>는 연작 시리즈입니다. 매해 강조되는 서사나 전달 방식, 뉘앙스와 분위기가  조금씩 변화해왔는데요. 2021년 <데게베 2> 쇼케이스를 준비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요?

엠마 / 이번 <데게베 2>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춤에 존재하는 경계와 구분에 관한 문제 인식’ 입니다. 저는 춤의 영역에서 지금 보다 더 ‘다양성’이 수용되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은 저의 성장에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는데요. 다양한 종류의 춤을 배우고, 여러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온 경험은 언제나 저를 성장시켰어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합니다. 하지만 사회가 특정 문화권에 대해 무지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춤의 영역 역시 선입견과 무지 혹은 무시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데게베 2>에서는 ‘춤의 다양성’에 대해 초점을 맞춰 창작했습니다.

용일 / 그동안 <데게베>의 시나리오는 엠마누엘 사누 안무가의 이야기가 중심에 있었던 것 같아요. 엠마누엘 사누의 경험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방식에 가까웠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엠마누엘 사누가 아니라 처음으로 제가 누구인지, 무용수 박용일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면서 작품에 임해야 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무용수인지 끝없이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Q. 전작에서 충돌, 힘겨루기, 쟁탈전 등 직접적으로 등장하던 대립에 관한 이슈가 이번 <데게베 2>에서는 전면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안무가로서 어떤 변화와 고민 속에서 구성한 것인지, 무용수로서는 참여하면서 어떻게 해석되었을지 궁금합니다.

엠마 / 이번 작품에서는 저 자신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에 이어 저의 경험을 좀 더 설명해볼게요. 제가 춤을 배워온 과정은 다양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춤을 경험하고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께 배웠죠. 하지만 그 누구도 하나의 춤을 선택하라거나, 춤을 정의하라고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단지 제가 어떤 방향으로 계속 춤을 추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셨죠. 하지만 아프리카 출신의 안무가들은 같은 질문을 자꾸만 마주하게 됩니다. ‘당신이 추는 춤은 무엇인가요?’, ‘무슨 춤 추나요?’ 저는 모든 춤은 서로 다른 접근법과 특정한 힘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데게베>에서는 저의 춤이 시작한 그곳에서부터 출발해, 저의 춤이 어디로 가는지,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어요. 

용일 / 과거의 <데게베>에서는 내 말을 들어 달라고 과격한 표현이 필요했어요. 실제 제 삶에서도 예전에는 차별과 관련한 이슈를 겪을 때, 화가 먼저 치밀어 오르거나 울화가 터지는 경험이 잦았습니다. 우리는 5년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계속 이야기해 왔죠. 그러나 요즘은 화를 표출하기보다 천천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이제 바득바득 이를 악물고 그만하란 말이야, 하고 말하는 대신 차분하게 질문하게 된 거죠.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이렇게 태어나서 이런 삶을 살아왔는데 너는 어떤 사람이니?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물론 여전히 서로의 다른 점을 찾아내 차별적으로 행동하는 이들이 있죠. <데게베>가 던지는 주제는 여전히 유효하기에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차별과 경계에 관한 변화가 끝나지 않는 이상, <데게베>도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다음 <데게베>에 대해 어떻게 상상하고 있나요?

엠마 / 이번 상영작은 쇼케이스입니다. 제가 가진 경험과 고민을 제작 과정에 공유하고 제작에 참여하는 이들과 토론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 시켜 왔어요. 본 작품에서는 더 다양한 춤이 등장했으면 합니다. 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움직이니까요. 인간으로서 저의 삶과 저의 춤은 계속 함께 움직입니다. 삶은 다양하고, 인간도 다양하죠. 그러니 춤도 다양할 수밖에 없어요. <데게베>는 저의 유년 시절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질문을 종종 받아요. ‘왜 <데게베>를 계속 만드는가?’ 여전히 타인을 무시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무시하는 존재는 무지하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해 저는 더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용일 / 이제야 우리가 말을 걸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니 과거에는 소리를 질러야 했다면, 이제는 차분히 말해도 듣긴 들어요. 대화, 발화가 시작된 거죠. 이번 쇼케이스가 더 확장되면 ‘개화’의 느낌이 날 것 같아요. 그 이후의 <데게베>는 아예 달라질 수도 있겠죠. 과거에는 소리를 지르고 화도 내보다가, 이제 차분히 말 걸기를 하게 되었으니, 나중에는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농담도 하고 익살도 부리면서요.

글쓴이 : 보코(춤 웹진 ‘몿진’ 편집인)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